눈을 뜨고 나서, 저도 모르게 '오늘도 동방에 가서 연습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이제는 더 이상 나가지 않아도 되다는 생각에 시원섭섭한 감정이 앞서는 일요일 오후입니다.
지휘를 맡게 된 계기를 생각해보면, 지난 정기 연주회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 때 승호가
마지막엔 얼마나 행복해 보였던지... '나도 저런 합주를 한 번 만들어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의욕 반, 의무감 반 이런 마인드로, 당시 9월 연주회 뒷풀이 때 많은 선배님들을
앞에 두고 다음에 지휘한다고 자신있게 말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지금 생각해도 무슨
생각으로 당당하게 '제가 다음에 지휘 합니다' 라고 말했는지 참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준비를 시작하면서 솔직히 막막하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수십곡의 후보곡 중
막연하게 고른 홀베르그 모음곡. 여기서 '지난 연주회의 피아졸라의 곡처럼 관객 뿐만
아니라 합주단원들에게도 감동과 재미를 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합주 연습할 때도
몇 번이나 지나간 지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클래시컬하고, 대중의 공감을 사기에 좋은
곡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최소한 몇 번 들어보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좋은 합주곡이란, 지휘자 입맞에 맞는 곡이 아닌 합주단원들에게도
합주의 재미를 느끼고 다시 하고 싶다라고 느끼게 하는 그런 곡이었는데, 그런 목적이
잘 달성이 되었는지는 합주단원들만이 알겠죠. : )
곡이 단원들에게 어떻게 보여지고 느껴졌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합주단원들이
요즘 같이 스펙도 쌓고 자기 공부도 해야할 시대에, 이렇게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주 3회 연습과 파트 연습 그리고 가끔 개인 연습까지 나와서 하는 것을 보면 참 대견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휘자가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구성원들을 보며
가끔 답답함을 느낀다면, 아마 단원들은 지휘자의 명확하지 않은 혹은 자주 바뀌는
지시나 기계처럼 연습해야 하는 상황에서 또한 답답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지휘자가
인내심이 필요하다고들 하지만 사실 단원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연습을
하면서 가끔 들기도 했습니다.
뭔가 고리타분한 얘기가 되기 전에 여기서 합주에 관한 글은 줄여야 될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부족한 저를 잘 따라준 21명의 합주단원 여러분께 정말 고마움을 느끼고
저는 참 행복한 지휘자였던거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행복했나요? ^^
합주단원들에게 부치는 짧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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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파트 : 스펙들은 좋은데...
윤규 : 1파트 맡으랴 리고동 솔로도 하랴 수고 많았다. 너 없었으면 연주회 못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저 고맙다.
예솔 : 예솔이랑 많이 친해지고 싶었는데, 여건이 안 됐네.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아. 일단 내 번호부터 저장이나 ^^
철우 : 1파트 분위기 메이커이자 내 말 안 듣는 철우가 요기잉네 ㅋ 농담이고 넌 정말 차기 거장감이다. ㅋㅋㅋ
현석 : 우리 노예 ㅠㅠㅠㅠ 주인말 들으면서 1파트 조용히 시킨다고 고생 많았어. 이제 임기 30% 진행에 눈물을 ㅠ
2파트 : 초반에는 에이스, 후반에는 러브라인과 근성들로 점철되는 흐물거림
윤수 : 전직 노예. 지난 연주회가 내 개인의 영달이었다면, 이번에는 역으로 바뀐거 같네. 파트 잘 이끌어줘서 고맙다.
은성 : 개인의 영달의 희생자. 좋은 봄날 보내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험 준비하는거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 ^^
연주 : 우리 연쥬는 일단 나 밥 사주면서 천천히 이야기 하자구. 언제 먹을거야? 나 메뉴 정했어 ㅋㅋㅋㅋ
선규 :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군대 가기 전에 연락해. 형이 조언 많이 해줄게. ㅠ
진현 : 우리 근성이, 나 아직 중남미 문화사 과제하고 있다고. 인육을 왜 먹었냐고 아놔 ㅠ 내일 202호 강의실에서 보자구.
교근 : 우리 근성이, 근성 덕분에 많이 웃어서 즐거웠고, 너무 까서 미안해 ㅋ 장난인거 알지? 형이 밥 한 번 사줄게.
3파트 : 악보 다 외운 유일한 파트.
현수 : 고성한의 뒤를 이어 애들 밥 사준다고 고생 많았어. 하지만 진리의 쿠에카가 나타난다면 ㅠㅠ
은국 : 우리 은국이. 형들이 편하지? 합주 연습하는데 계속 문자 오는거 기현이 맞지? ㅋㅋㅋ 답장 참느라고 수고 많았다. ㅠㅠ
여진 : 여나 강주용 같은 나쁜 친구들을 둬서 이상한 흡연 모션이나 배우고 말이야 ㅋ 진현이 관리한다고 고생 많았어 ㅠ
선숙 : 너도 빠른 고 이런 나쁜 말은 또 어디서 배워가지고 ㅋㅋ. 내 생명의 은인인 선숙이는 밥 한 번 사줄게 ㅋ
윤성 : 윤성이 요새 왜이리 드립이 죽었어? ㅋㅋㅋ 3파트에서 현수에 그림자에 너무 가린 듯 하다. ㅠㅠ
세훈 : 늦게나마 합주도 참여해주고 내가 정말 고맙다. 세훈이는 이상하게 애들한테 너무 이미지가 Positive 하단 말이야. ㅋㅋㅋ
4파트 : 파트 연습은? ㅠㅠ
승용 : 제발 박자 좀 ㅠㅠㅠㅠ 승용이는 조만간에 지휘봉 수여식에 참여할 것.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용 : 진리의 아이폰. 4파트 솔로 재밌었음? 연주회 끝나고 심지어 오늘도 동방에 간다니. 넌 정말 ㅋㅋ
용익 : 진리의 쿠에카. 앞으로 윈드밀 까지 말 것. 까면 사살함. 쿠에카로 지휘하면 내가 4파트장 해준다.
재희 : 내가 조금만 더 어렸어도 내 드립에 대꾸할 수 있었을텐데 ㅋㅋㅋ 여튼 봄날이니 볼터치 아니 자주 뛰어다녀 ㅋ
선경 : 너 열심히 한다면서 자꾸 늦잠자고 혼나야겠다. ㅋㅋㅋㅋ 다음에 오징어 한 번 사주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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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중주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
듀엣
현석이랑은 지난 윈드밀 (안 돼 ㅠ) 시절에 만나서 인연(?)을 맺게 된 사이로, 어쩌다보니 듀엣까지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콰르텟을 해본 노예 3명은 잘 아는 바겠지만, 실력이 안 되면 근성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마인드로 가끔은 수면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하루종일 연습하기도 했는데, 이런 상황을
두 번씩이나 겪은 노예 현석이에게 이제 자유를 주려고 합니다.
이 녀석도 참 음악적 욕심이 많아서 그런지 이런 노예 생활에 잘 따라주고 그러더군요. 가끔은 망이.
망소이의 난 처럼 저에게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지만 성공적으로 잘 진압했던 거 같아서 매우 기쁩니다.
(특히 정박자와 엇박자의 사이에서 일으켰던 반란은 결국 정박자의 패망으로 이어졌지요.)
무언가의 정박자와 셋잇단음표가 난립하는 악보를 보며 막막해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부족하
지만 어엿한 음악을 만들어 두 번이나 무대에 올렸다니 지금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여담이지만 숙대에서
조금 더 잘친거 같아 아쉽습니다.)
생각 없이 동아리 악보들을 뒤적거리다가 만난 무언가와 미경, 혜령 두 선배님께서 지원해주신 '너에게
보낸 마음' 덕분에 잔잔하고 아름다운 곡의 매력에 두 달 반 동안 빠질 수 있었던 건 참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동아리 학부생으로서는 이 두 곡은 다른 동아리를 포함하더라도 저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원곡이 피아노인 곡을 두 곡 씩이나 고른 것도 참 우연이었고, 현석이나 저나
많은 음악 공부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동아리를 이끌고 연주회 준비하랴 악덕한 주인 만나서 듀엣도 연습하랴 아마 심신이 고달팠을
현석이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끼는 바입니다. 숙대 찬조 공연 끝나고 너무 콰르텟에 집중하여 다소
아쉬운 결과를 남겨 또한 미안함도 가지는 바입니다.
오늘부로 노비문서는 한 줌의 재로...
콰르텟
만들어지기 전까지의 과정은 생략하고 ... 우여곡절 끝에 급하게 만들어진 33기 콰르텟. 방학 1주 학기
중 3주를 연습했는데,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괜찮은 곡을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아쉬움
이 남긴 하지만, 이렇게 같이 했다는 것에 조금 더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앞으로 동문 연주회에서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학부생에 다들 고학년으로서 이렇게 동기 4명이 모여 중주를 할 수 있을 기회
는 흔치 않으니까 말이죠.
다들 힘든 사정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승호는 이제 졸업, 세훈이는 중국에 가야 하는데 제대로 준비도
못한 상태, 윤규는 파트장에 합주 솔로, 저는 지휘와 듀엣에 숙대 찬조 공연을 앞둔 상황.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그냥 한 번 해보자' 라는 말에 시작한 콰르텟. 중간에 제가 너무 힘들어서 윤규랑 승호한테
'나 정말 못하겠다' 라고 말했던 것도 생각나고, 한창 승호가 Road to Lisdoonvarna 악보를 찍고 있을 때
그 말을 한 지라 너무 미안했던 것도 생각이 나고, 밤마다 정말 없는 시간 쪼개서 밤 12시 반까지 연습하고
집에 가던 것도 생각납니다. 지난 급조 트리오랑은 또 다르게 다들 정말 열악한 개인 사정 속에서 이렇게
연습하던걸 생각하면 '미쳐야 미친다'라는 말이 멀리 있는게 아닌 것 같습니다. 없는 상황에서 일정 경지에
미치기 위해 미쳐버렸던 거 같습니다.
윤규는 자주 놀리긴 했지만, 스스로도 콰르텟에서 어려운 파트 맡고 합주 솔로도 하면서 실수할 때 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스스로를 자책했을지 생각하면 참 마음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윤규 없었으면
아마 합주나 콰르텟이나 이렇게 못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고맙다. 솔로 탈출 간절 기원 ㅋ
승호 악보를 찍는 그 근성에 놀랬습니다. 아마 악보 요청 쇄도가 들어올 것 같습니다. 그다지 경험이
많지 않은 저에게 연주회에 있어 많은 조언도 해주고 (이건 윤규도 마찬가지) 콰르텟도 이런 멋진 곡을
선사 해준 녀석. 어서 마법사에서 벗어나기를 기원 ㅋ
세훈이는 2월에 막 토플을 끝낸 시점에서 중국 갈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이렇게 연주회에만 올인
한다고 고생이 많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녀석도 여건 안 되는데 콰르텟이랑 마지막에 합주까지 참여
해서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법사 테크 타기 1년 전 탈출 기원 ㅋ
이제 승호는 졸업하여 대학원 진학을 하고, 세훈이는 장기간 중국으로 가며, 저는 교환학생으로 떠나고,
윤규는 학교에 남아 졸업 준비를 하며 다들 뿔뿔이 흩어질 텐데, 이번 연주회를 좋은 추억으로 언젠가
다시 한 번 뭉칠 날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33기 화이팅입니다 !! 그리고 다들 솔로 탈출합시다. ㅋ
은국이가 생각해서 저한테 준 선물. 승호가 이전에 최고의 선물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르네요.
네, 정말 최고의 선물이었구요. 다만 지난 글을 보시면 승호가 다른 지휘자한테 이런거 해주면
삐진다고 했는데, 아마 삐졌을거 같네요. ㅋㅋㅋ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동문회장님과 동문회 선배님들께 감사드리고,
연주회에 참여는 하지 못했지만, 식지 않은 애정으로 스태프로 참여한
한형, 산하, 지우, 자현, 지연, 수현, 아리, 유영, 현우 참 고마워요. ^^
(더 있던거 같은데 생각이 안 나서 ^^; 혹시나 있다면 미안해요)
아마도 제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을 연주회로 남을거 같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고마운 마음만 전할래 ㅎ